0x22번째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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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이 나의 서른네번째 생일이었다.
어떤 생일을 보냈는지 가볍게 훑어보며 개발자로서의 나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재택근무

우리회사는 아직까지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근무했다. 하필이면 이날은 팀 스크럼도 없어서 팀원들 얼굴은 못봤지만 그래도 생일이라고 하니 메세지로나마 축하해주셨다. 6명이 다같이 사는 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심 때 집엔 나밖에 없어서 혼밥을 했다. 생일인데 남은 반찬에 밥먹자니 좀 그래서 집앞에서 갓구운 피자 한판을 사와서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다 먹었다. 다행히 저녁은 가족들과 다같이 식사를 했다.


슬랙에서 생일축하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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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슬랙에 알림이 떴다. 지금은 유기한 슬랙 워크스페이스에서 BirthdayBot이 잊지도 않고 내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한창 슬랙 처음 써볼 때 개발자 친구들과 뭐라도 해볼까 해서 재미로 만든 판교IT노예라는 슬랙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접속하지 않는다. 슬랙 봇 테스트하려다가 가장 간단한 봇으로 연동해본게 이 BirthdayBot 이었는데 매년 잊혀진 워크스페이스에서 나를 기억하고 축하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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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중인 글또 슬랙으로도 생일 축하를 받았다. 이쪽은 활동중이 분이 많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셨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하나하나가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소속감을 키워주는 것 같다.


생일케이크 촛불을 2진법으로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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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생일케이크에 초를 켰다. 34번째 생일이라 개발자답게 이진법으로 100010으로 초를 켜보았다. 아버지는 금방 이해하고 웃으셨지만 첫째 아들은 왜 초를 두개만 켜냐며 속상해했다. 케이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지개케이크였고 초도 아이들과 함께 끈다. 첫째가 초를 켜달라고 성화를 부려서 두번째엔 초를 전부다켜고 다시 한번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있는 집에선 누구의 생일이든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물론 나도 아이가 밝게 웃어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다. 케이크를 먹고나니 첫째가 생일축하 편지와 함께 문방구에서 사온 유희왕 카드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 벌써 이렇게 큰게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개발서적 선물로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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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생일선물로 죽을 때까지 코딩하며 사는 법이라는 책을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카카오톡에 위시리스트로 등록해놓고 잊고 있었는데 많은 주변분들이 선물을 챙겨주셨다. 책은 개발자라면 생각해볼법한 고민과 생각들을 재밌게 엮은 책이다. 선배개발자에게 술자리에서 여러가지 재밌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넋놓고 후루룩 읽어버렸다. 나는 과연 죽을 때까지 코딩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책의 마지막즈음에 나온 이 구절에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변화하고 바뀝니다.

최근 들어 너무 성장에 투자하고 있지 않고 있어서 이 문장이 좀 많이 찔렸다. 심지어 나는 죽을 때까지 코딩하는 예시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만 전혀 보고 배우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현실에 치여 산다는 핑계로 너무 손 놓고 있었다.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문장인 것 같다.




셀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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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면서 항상 걱정하던 것이 흉내만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개발이 즐거운 개발자가 아니라, 개발자라는 사실이 즐거운 개발자 말이다.

컨퍼런스는 열심히 다니지만 정작 컨퍼런스에서 배우는 건 없고,
깃헙에 레포지토리는 만들지만 완성은 하지 않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실속은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데 적다보니 정작 지금 내가 흉내만 내고 있는 듯 하다. 슬랙도, 사이드프로젝트도, 기술학습도, 네트워킹도 전부 너무 손 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주제에 어디가서 커피챗을 하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들킬까봐 다른 사람들에게 아는 척만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살 더 먹은 올해부터는 좀 실속을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여러가지 일을 벌리기만 하고 수습을 못하고 있는데 연말이 다가오는 만큼 하나씩 수습을 해보려고 한다. 평소보다 이른 연말회고를 하면서 다가오는 새해를 더 빨리 준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