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리셋 리뷰
한빛 미디어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 받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게임 개발자가 되는 것인가?
나에게도 게임 개발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이전부터 게임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나 스타크래프트
와 같은 RTS게임에서 유즈맵으로 나만의 게임을 만들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강제로 시켜보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13살 무렵에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나서는 간단한 달리기 게임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이랬던 내가 게임 개발 커리어를 선택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게임 개발은 분명 재밌다. 게임을 플레이 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지만 분명히 플레이 할때 느끼는 말초적인 즐거움 그 이상의 고차원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게임 제작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모든 창의적 창조적 활동이라면 비슷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반대로 그 만큼 고차원적인 창조의 고통이 수반된다. 특히 게임의 경우에는 ‘영화를 찍는 동시에 카메라를 개발하는 기분’이라는 책의 표현처럼 예술과 과학 사이에 걸쳐있는 동시에 빠듯한 일정에 맞춰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결국 게임 자체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사명의식이 없이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다.
“게임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뒤에는 기업의 횡포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
- 피, 땀, 리셋 중에서…
1인 개발과 같이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재정문제와 같은 비즈니스적 이슈와 부딪히기도 하며, 정작 내가 원치 않는 게임을 만들게 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개발자임에도 게임과 전혀 관계없는 업무를 담당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악명높은 이른바 ‘크런치 모드’와 같이 살인적인(비유가 아니다) 업무강도는 이미 너무나 악명 높다. 그에 비해 그 결과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IT 업계 뉴스에서 게임이 대박나서 전직원 연봉을 얼마를 올려줬느니, 성과급 잔치를 했느니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를 한번쯤 접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과 같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접는 프로젝트가 곱절은 더 많다. 이 책은 게임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비추며 평균 근속년수가 3년이 안되는 업계의 불안정성을 노골적으로 조명하지만 동시에 그 회복과정 까지도 다루고 있다.
친숙한 게임들
이 책의 저자 제이슨 슈라이어가 미국 게임기자인 만큼 내용 중 미국 독자들에게는 친숙하지만 한국 독 자들에게는 조금 생소할수도 있는 둠
, 퀘이크
, 울티마
, 시스템 쇼크
, 데이어스 엑스
와 같은 서구의 게임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라스트 오브 어스
, 바이오 쇼크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데드 스페이스
등 스팀으로 게임을 즐기는 분이라면 친숙한 게임들이 더 많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에픽미키
와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를 즐겁게 플레이 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챕터1, 2를 가장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챕터 별로 주로 다루는 게임들을 아래에 정리하였으니 만약 관심 있는 게임이 있는지 참고하셔도 된다. 물론 해당 게임을 모른다고 해서 읽을 수 없는 것은 절대 아니고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란 의미이므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챕터 1 저니맨
- 시스템 쇼크, 데이어스 엑스, 에픽 미키
챕터 2 프로젝트 이카루스
- 바이오 쇼크,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 엑스컴
챕터 3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 플레임 인 더 플러드, 드레이크 할로우, 카인
챕터 4 사라진 스튜디오
- 바이오 쇼크2, 엑스컴
챕터5 워커홀릭
- 데드 스페이스, 배틀필드 하드라인
챕터6 핏빛 양말
- 머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코페르니쿠스
챕터7 웅장한 골칫덩어리
- 라자루스,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 크루서블, 킹덤 오브 아말러, 인피티니 블레이드:던전
챕터8 던(건)전 키퍼
- 데저트 스트라이크, 던전 키퍼, 엔터 더 건전
게임 개발자 취준생들의 예방접종
저자는 게임 개발자가 아닌 블룸버그 게임 기자로 전작인 피, 땀, 픽셀에 이어 피, 땀, 리셋까지 한끗 날리던 게임 개발자들의 파란만장한 썰 인터뷰를 정리하여 스토리로 엮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사실 이정도의 썰을 세마나, 컨퍼런스에서 푼다면 정말 돈을 주고 들을 만큼 교훈이 많이 담겨있고 또 흥미진진하다. 다만 전작에서는 여러가지 역경을 견디고 어렵사리 게임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였다면 피, 땀, 리셋에서는 그렇게 어렵사리 만든 게임과 회사가 다시 리셋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개발기술 관련 이야기보다는 프로젝트의 계약, 이직과 창업, 게임 제작 철학과 같이 비개발(?)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게임을 개발하면서 겪은 기술적인 어려움 봉착과 그 극복과정을 다루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어렵사리 팀원을 모으고 재정 투자를 받았다가도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결국 회사 폐업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대규모 해고와 같이 어둠고 우울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도 해고를 독립의 기회로 삼는 직원들의 이야기들도 함께 소개한다.
따라서 개발자 뿐만 아니라 게임 디자이너(기획자), QA, 작가, 엔지니어 등 게임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현업 게임업계 종사자시라면 이 책을 통해 위안도 얻어 가실 수 있을 것 같다. 취준생이라면 ‘어떻게하면 좋은 게임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분 보다는 ‘내 게임 개발 커리어의 끝은 어디일까?’, 또는 게임 개발을 고민 중인 분의 ‘나는 게임 개발이 어울리는 사람일까?’와 같은 질문을 하고 계신 분들게는 충분히 좋은 예방접종이 되리라 생각한다.
실패가 아닌 리셋
이 책도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이 리셋으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게임 개발에도 리셋버튼이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컨셉과 디자인, 코드를 리셋하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통째로 리셋하기도 하며, 개발자 본인의 커리어를 리셋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물론 그동안의 피, 땀이 너무 아쉬워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참아낼 수도 있겠지만 다시 리셋을 택하고 새 출발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리셋의 선택지가 게임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며 오히려 이 리셋을 통해 대박을 터트리는 사례들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모든 게임 개발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